최근 워싱턴 D.C., 보스턴, 뉴욕까지 미국 동부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어떤 나라에서 사업을 하려면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알아야 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그런 의미에서 조금씩 역사와 문화도 공부해보려 합니다.
오늘은 미국 건국의 아버지이자 첫번째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이 존경받는 이유에 대해 적어 보았습니다.

D.C. 첫인상

제 첫인상에 D.C.는 기본적으로 깔끔하고 뭔가 품격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기본적으로 정장을 입은 사람들이 많았고 뉴욕보다는 덜 분주했지만 LA보다는 더 분주해보이는 느낌이었습니다.
경찰들이 상당히 많다고 느꼈고, 유럽풍 건물들이 늘어서 있는 것이 멋졌고, 박물관과 기념관들이 많아서 볼거리들이 많았습니다.
미 의회 의사당 U.S. Capitol

House of Card Intro에서나 봤던 U.S. Capitol의 모습을 직접 보니 멋지더군요
(저는 왜 House of Card를 떠올리면 Game of Thrones의 Intro곡이 떠오르는지 모르겠습니다 ㅎㅎ)
U.S. Capitol은 꼭 들어가보라는 친구의 권유가 있어서 들어가서 투어도 신청하여 짧은 다큐멘터리를 보고 투어를 했는데 미국인이 아니지만 뭉클하게 재미있었습니다.
지금의 미국을 있게 했던 여러 리더들을 잘 기려놓은 것을 볼 수 있었는데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조지워싱턴에 대한 이야기와 그림이었습니다.

이건 1783년,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공식적으로 독립한 후, 독립전쟁 총사령관이었던 조지 워싱턴이 대륙회의 앞에서 총사령관직을 내려놓는 장면을 묘사한 대형 벽화입니다.
* 참고로 "대륙회의"는 미국 독립혁명 시기 13개 영국 식민지 대표들이 모여 만든 회의체로, 미국 연방의회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의 마지막 연설에서 그는 이렇게 얘기했다고 합니다.
“Having now finished the work assigned me, I retire from the great theatre of Action;
and, bidding an affectionate farewell to this august body,
I here offer my Commission, and take my leave of all the employments of public life.”
“부여된 임무를 이제 마쳤으므로, 나는 위대한 행동의 무대에서 물러납니다.
이 장엄한 회의에 따뜻한 작별 인사를 드리며, 지금 나의 임관장을 반납하고 공적 삶의 모든 직무에서 떠납니다.”
조지 워싱턴
조지 워싱턴이 궁금해졌습니다.
조지 워싱턴(1732–1799)은 버지니아주에서 태어나 20대에 영국군 군생활을 하였고, 이후 부유한 미망인과의 결혼을 통해 플랜테이션 소유주로서 부유한 삶을 살았으며, 버지니아주 식민지 의회 의원으로 정치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다 보스턴 차 사건 이후 영국의 강압적인 정책에 반발하여 식민지 권리 옹호에 동참하다가, 독립전쟁 총사령관으로 임명되어 미국 독립전쟁의 총사령관으로 승리를 이끌었습니다.
1783년 미국의 공식적인 독립이 인정된 후, 앞에서 본 그림처럼 군권을 의회에 반납하며 군사 독재 대신 공화정의 길을 열었다는 평가 혹은 칭송을 받고 있습니다.
이후 1787년 다시 필라델피아 헌법회의에서 의장을 맡아 미국 헌법 제정에 기여했고, 1789년에는 만장일치로 초대 대통령에 선출되어 두 차례 임기를 수행하였습니다. 이때에는 헌법에 따른 대통령제와 삼권분립, 평화적 권력 교체의 전통을 정착시켰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두 차례 임기 이후 중요한 사건이 발생하는데, 워싱턴은 3선 권고를 거절하고 1796년 고별연설을 통해 불출마를 선언함으로써 스스로 권좌에서 내려온 것입니다.
그리고 1797년 3월 4일, 권력은 평화롭게 존 애덤스에게 이양됩니다.
65세에 스스로 물러난 워싱턴은 은퇴 후 얼마 있지 않아 67세의 나이로 생을 마쳤습니다.
조지 워싱턴의 상징성

오늘날 미국의 수도가 "워싱턴 D.C."로 명명된 것은 바로 조지 워싱턴의 이름을 기리기 위해서였고, 1달러 지폐에 들어간 인물도 조지워싱턴이며, D.C.의 상징적 기념비인 워싱턴 기념탑(Washington Monument) 역시 그의 리더십과 헌신을 추모하기 위해 세워졌습니다.
이 외에도 워싱턴의 이름을 딴 주(워싱턴 주), 수많은 도시, 거리, 대학과 기관들이 존재한다고 합니다.
그만큼 조지 워싱턴은 단순한 역사적 인물이 아니라, 국가 정체성을 상징하는 아이콘이라고 할 수 있죠.
온 세계가 여전히 왕정이던 시대
지금의 시각으로 보아서는 이게 왜 대단한 결단으로 칭송받는지 의아하실 분들도 계시겠지만, 조지 워싱턴이 군권을 내려놓던 무렵인 18세기 후반은 여전히 주요 강대국의 다수가 세습 군주제를 취하던 시대였습니다.
영국은 입헌군주제를 표방했지만 국왕 조지 3세가 여전히 강한 영향력을 행사했고, 프랑스는 절대왕정 아래 있다가 이후 대혁명이 있었으나 곧 나폴레옹 황제에 의한 통치가 시작되던 시점이었습니다.
중국(청), 일본(도쿠가와 막부), 한국 등 아시아 국가들도 물론 세습 지배 체제였습니다.
(다만, 네덜란드 연합공화국, 베네치아 공화국 등 공화국의 예외도 존재했다고 합니다.)
어쨌든 이런 환경 속에서 미국은 "군주 없는 체제—대통령제"를 선택하고 운영하는 실험에 착수했던 것이고, 이 정책의 정착에 크게 기여한 인물이 조지 워싱턴이었던 것이죠.

조지 워싱턴은 어떤 심정이었을까
제가 가장 궁금했던 지점은, 과연 엄청난 인기와 권력을 누리던 조지 워싱턴이 군사령관에서 내려올 때, 그리고 대통령 3선 권고를 거절할 때 어떤 심정이었을까 하는 것입니다.
권력은 마약과 같다고들 하니까요.
군사령관에서 내려올 당시 그의 나이는 51세였고, 3선 권고를 거절할 당시 그의 나이는 65세였습니다.
그때의 51세, 65세가 어떤 의미였는지 모르겠으나, 2대 대통령 존 애덤스는 90세, 3대 대통령 토마스 제퍼슨은 83세에 사망하였으므로, 그때도 아주 많은 나이는 아니었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무튼 그의 마음을 엿볼 수 있는 기록들이 있는데, 독립전쟁 막바지인 1783년 6월 8일 ‘각 주에 보내는 순환서한(Circular Letter to the States)’에서 그는 이렇게 썼다고 합니다.
“I am now preparing to return to that domestic retirement,
which it is well known I left with the greatest reluctance.”
“나는 이제, 내가 큰 망설임 끝에 떠났던 그 가정적 은거의 삶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다 찾아보지는 않았지만 다른 기록에서도 그가 가정으로 돌아간 평범한 삶으로 돌아가고 싶어했다는 기록들이 있다고 하고요.
그가 독립전쟁에 참전할 당시부터 이미 큰 부자였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조지 워싱턴은 사명감에 의해 총사령관, 그리고 대통령으로서의 임무를 수행한 것이 아니었을까요.
그의 삶은 역사의 수많은 독재자들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리고 이 정도의 사명감은 신앙의 힘이 아니면 어려웠을 거라는 생각도 들고요.
나가며
군주제가 주류이던 시대, 조지 워싱턴과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은 대통령제를 통해 전혀 새로운 길을 정착시켰습니다.
조지 워싱턴의 마음속에는 늘 조용한 농부의 삶에 대한 갈망이 있었던 것으로 예상되지만, 동시에 공동체를 위한 사명, 그리고 신앙에 따라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했고, 물러나야 할 때 물러난 것으로 보입니다.
이 지점이 그의 삶에서 감동을 느끼게 합니다.
물론 제가 건국의 아버지를 더 아름답게 포장한 기록들만 읽어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요.
그래도 어떤 공동체가 세워지는 데 있어서 리더의 헌신과 희생, 결단이 얼마나 중요한 지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돈이나 권력, 명예를 뛰어넘는 사명감은 어디로부터 오고, 무엇을 향하는가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됩니다.
장건 변호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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